급성심근경색, 그 후...
올해 1월 1일 아침 일찍 아들을 데리고 집을 나섰다. 새해 첫 일출을 보기 위해서다. 무안읍 중심에 떡하니 버티고 선 남산에 오를 참이다.
무안으로 귀농한지 6년이 넘는 동안 바쁘다는 이유로 남산에는 딱 한 번 올랐을 뿐이다.
남산은 높이가 약 150여미터 정도에 불과한 낮은 산이지만 꼭대기에 팔각정이 있고 그나마 산이없는 무안에서 아침 운동을 겸해 오르기에 부담이 없는 산이다.
내가 새해 첫날부터 산에 오르기로 마음 먹은 또 하나의 이유는 내 심장을 테스트 하기 위해서였다.
나는 지난해 11월 22일 급성심근경색으로 전남대병원 응급실에 입원하여 다음날 관상동맥조형술로 우측 손목혈관을 통해 막힌 심장혈관을 뚫는 시술을 한 바 있다.
시술하기 약 한 달 전부터 가슴의 통증을 느끼기 시작했는데 당시에는 별것 아닌것으로 생각했었다. ‘약간 피로해서 그렇겠지’라고 생각했다. 정말로 통증이 있을 때를 제외하고는 아무런 증상도 없었기에 좀 쉬면 괜찮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통증이 가끔 한번씩 찾아오기 시작했는데 갈 수록 더 심해졌다. 가슴을 쥐어짜는 듯한 통증으로 아무런 생각도 할 수 없었는데 통증의 시간도 더 길어졌다.
그제서야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은 나는 그동안 미루었던 건강검진을 받으러 무안병원에 갔다. 그런데 건강보험공단의 건강검진은 혈압, 피검사, X-레이, 위내시경검사, 대변검사, 소변검사가 전부여서 가슴 아픈 원인을 알아보기엔 부족했다.
그래서 검사 도중 간호사에게 ‘건강검진이 급한게 아니라 가슴통증이 더 큰 문제’라고 말하자 내과에 진료 접수를 해주었다.
내과담당 의사는 심전도와 가슴 X-레이를 찍어보고 내 얘기를 종합해 본 결과 협심증이 의심된다며 소견서를 써 줄테니 목포나 광주의 큰 병원에 가보라고 한다. 그리고 가슴통증이 심할때 혀 밑에 넣으라고 니트로글리셀린 설하정을 5알 처방해 주었다.
처방전을 받고도 보름 넘게 처방약도 사지 않고 병원에도 가지 않고 버텼다. 그러나 통증의 주기는 더 짧아지고 강도 또한 세졌다. 한번은 밤에 자다가 몸을 뒤척였는데 가슴통증이 시작되어 새벽까지 잠을 설치기도 했고, 한번은 화장실에 있을때 통증이 시작되어 5분 넘게 꼼짝하지 못한 적도 있었다.
이러다 죽는가 싶은 생각도 들었다. 더는 참을 수 없을 것 같아 아내에게 병원에 가야할 것 같다고 말하고 전남대병원에 인터넷으로 예약을 했다. 그랬더니 다음날 병원에서 전화가 와 예약날짜를 잡았는데 열흘 넘게 지난 뒤에야 겨우 예약이 가능했다. 그날 밤에도 통증이 왔다. 등에서 식은땀이 흐를 정도로 아팠다. 숨도 차서 숨쉬기가 어려워지자 숨을 토막내서 짧게 끊어가며 쉬어야 했다. 급하게 아들에게 처방전을 꺼내주고 혀밑에 넣는 약을 사오게 했다. 약이 도착하기 전 통증이 멈췄다.
병원 예약 날짜까지 도저히 기다릴 수 없을 것 같았다. ‘오늘밤에는 제발 통증이 없어야 할텐데.’ 마음 속으로 기도가 나왔다. 기도 덕분인지 밤에는 통증이 없었다.
아침이 되어 아내에게 “병원에 가서 진찰 받고 상태를 파악해본 뒤 광주에서 시장을 봐가지고 오겠다.”고 말하고 트럭에 올라탔다. 그런데 혼자 보내는 것이 불안했던지 아내가 가방과 외투를 주섬주섬 챙겨들고 트럭 조수석에 올라탔다.
하는 수 없이 아내와 함께 전남대 병원으로 행했다. 가는동안 내내 아무런 증상이 없었다. 금남로를 지나 옛 전남도청 앞 로터리를 통과해 전남대병원 앞 오거리에 도착했다. 죄회전을 하면 병원주차장으로 향하는 길이다. 그런데 가슴에서 서서히 조여오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신호가 바뀌어 좌회전을 한 후 병원 입구에 있는 제1주차장을 지나 제2주차장으로 향하는 동안 통증이
심해졌다. 마음은 급한데 주차장으로 향하는 차들이 길게 꼬리를 물고 있다. 그 뒤를 따라가는 시간이 길게만 느껴졌다. 운전대를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가고 조여오는 가슴 통증으로 엉덩이는 의자에서 떨어진 지 오래인데 나도 모르게 몸을 비틀고 있었다. 아내에게 가방에 넣어 온 약을 꺼내달라고 하여 혀 밑에 급히 넣었다. 그래도 통증은 가라 앉을 줄 몰랐다.
주차장은 아직도 백미터나 남았는데......
한 2분쯤 지났을까? (그러나 내 생각으로는 한 10분도 더 넘는 시간 같았다.) 약효가 퍼져서 인지 통증이 가라앉았다. 겨우 주차장 2층에 트럭을 주차하고 수속을 하고 다시 검사를 하고 대기했다가 시간이 한참 지난 오후 3시가 넘에 순환기내과 의사를 만났다. 의사는 검사결과를 보고 “선생님, 이대로 집에 가시면 큰일나요. 응급실로 가서 응급으로 접수하고 내일 바로 시술해야 합니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응급실에서 날밤 새우고 이튿날 오른쪽 팔목 부위 혈관을 절제하고 철사를
넣어 막힌 심장혈관을 뚫었다.
참 신기한 것은 그처럼 아프던 통증이 사라졌다는 것. 팔목의 시술 부위도 팔목밴드로 끝. 그외는 언제 아팠냐는 듯 모든게 정상으로 돌아왔다.
4일 입원하고 퇴원했다. 보통은 이틀이면 퇴원인데 나는 경과를 더 지켜보자며 이틀을 연장했다. 내 경우는 혈관이 68~73% 정도 막혀 처음에는 뚫기가 어려워 개흉수술을 검토했을 정도였다. 그래서 의사들도 내 혈관이 뚫렸을때 “야, 풀렸다!” 하고 소리지르는 것을 내가 수술실에 누워 직접 들었다. 그래서인지 암튼 입원실에서 별로 아프지도 않은데 이틀을 더 있다가 퇴원했다.
퇴원후에는 4~5일 정도 지나 심장이 불규칙하게 두세시간 정도 뛴 것과 보름 정도 지나 약 다섯시간 정도 쿵쾅거리며 뛴 것이 다였다. 그 뒤에 한번 외래진료를 가서 증상을 얘기하고 처방 받은 후로는 한번도 심장이 불규칙하게 뛰거나 빠르게 뛴적이
없었다.
달리기를 해봐도 전에는 가슴이 아파 제대로 뛰질 못했는데 이젠 아무런 불편이 없다. 언제 아팠냐는 듯.
그래서 새해 첫날 남산에 올라가며 심장을 테스트해볼 심산으로 열심히 걸어 올라갔다. 심장은 괜찮았다. 건강했을때와 다름없이 잘 뛰어줬다. 다만 나의 심폐기능이 정상인에 비해 떨어지기 때문에 그로 인해 숨만 몹시찼다.
그래도 중간에 한번만 쉬고 정상에 있는 팔각정까지 내쳐 올라갔다.
이젠 스스로 자신감이 생겼다. 조금만 더 늦었다라면 큰일 날뻔 했지만 차라리 빨리 알아서 대처할 수 있게 된것이 천만 다행이다 싶었다.
기분도 상쾌해졌다. 올해는 좋은 일이 많을
것 같다.
잠깐 땀을 식히고 나니 동쪽 건너편 산봉우리 가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올해 첫 일출이다.